“기업의 주인은 기업 자신이다!” 싱가포르 국립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신장섭교수는 '기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8대 기업명제를 제시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업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기업 자신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의 모든 기업은 영속하고 번영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기업은 무엇을 위해 어떤 가치를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주제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기업은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을 가지고 있고, 그 이해 관계자에는 기업의 경영자와 직원 뿐 아니라 대주주와 소액 주주, 그리고 금융기관이나 고객, 지역 사회까지 다양한 형태로 기업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이해관계자 중 기업의 소유권인 주식을 보유한 주주는 실질적으로 기업의 주인이 되는가?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면, 기업은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해야 하는가?
법인이 탄생한 배경은 소유와 통제의 분리를 전제로 한다. 법인은 개인과 마찬가지로사회적 실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 실체로서의 기업은 계약으로 맺어진 경영자와 직원에 의해 운영되고, 주주는 그 법인의 주식의 주인으로 주식의 지분만큼의 소유권을 가지고 이익에 대한 배당을 받는다. 하지만, 주주가 갖는 지분만큼의 소유권은 경영권과는 다르며, 모든 기업이 이익에 대해 배당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인의 소유권인 주식의 주인인 주주 이익의 극대화가 기업의 존재 목적이나 경영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최근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명분 하에 소액 주주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인으로서 기업이 이익 추구와 사회적 가치 추구 등 기업 본연의 존재 가치가 아닌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경영을 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해 저자는 8가지 명제를 통해 주주 가치론과 지배구조 개혁론을 반박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8대 기업 명제는 다음과 같다
- 기업명제 1) 주주는 주식의 주인일 뿐이다. 기업의 주인은 기업 자신이다.
- 기업명제 2) 법인이 만들어지는 순간 기업의 소유와 통제는 근본적으로 분리된다.
- 기업명제 3) 기업은 영속을 추구한다.
- 기업명제 4) 기업의 존재 목적은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다.
- 기업명제 5) 비즈니스그룹은 법인간 자산분할을 통해 확장한다.
- 기업명제 6) 기업은 적법한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가치를 추구한다.
- 기업명제 7) 좋은 경영성과를 내는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 지배구조다.
- 기업명제 8) 기업통제의 기본 원칙은 책임과 권한이 상응해야 한다.
저자는 책에서 기업은 적법한 범위에서 자유롭게 가치를 추구한다고 제시한다. 기업은 ‘사업판단준칙’ 내에서 다양한 가치를 추구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며, 이윤을 얼마나 많이 어떤 방법으로 추구할 것인지는 개별 기업이 알아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한다.
주주가치론과 이해관계자론은 이러한 자유주의적 법인의 실체를 부정하는 양극단의 시각들이다. 주주가치론에 의하면 기업은 주주들이 ‘적절한 이익’을 올리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것이 주식을 발행할 때 주주에게 원래 약속한 내용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에 반해 이해관계자론은 기업이 ‘이해관계자’들을 포함하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기업은 사회적 존재로서 영리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영리 추구 과정에서 공익을 추구할 것인지, 그렇다면 얼마나 추구할 것인지 등은 적법한 범위 내에서 기업이 자유로이 판단하는 것이다.
기업의 목적이 주주 가치 극대화라고 하는 것은 일반 주주들의 일방적 주장이다. 처음 회사를 만들 때 창업자들은 다양한 가치관을 갖고 창업한다. 기업을 키워 나가는 과정에서 가치관을 바꾸기도 한다. 기업이 공개되는 것은 창업자들이 어떤 기업목적론을 갖고 있든 값싸고 질 좋은 제품·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창출하여 기업존재론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일반 주주들은 기업공개 때 그 기업의 발전 과정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앞으로도 경영 성과를 계속 잘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주식을 매입한다. 따라서 기업을 공개했다고 해서 경영진에게 주주 가치 극대화를 유일한 목적을 삼으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기업이 추구해온 가치관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그 목적을 주주 가치 극대화 하나로 단정 짓는 것은 일반 주주 전체주의 혹은 일반 주주 독재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주는 법인이 발행한 특수한 증권의 소유자일 뿐이다. 경영자는 기업과 명시적인 계약에 의해 경영권을 소유하고 있고, 그 경영상의 판단에 의해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진다. 하지만 주주는 기업의 경영과 관련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법적 책임은 없이 투자에 대한 이익 가치 배분 권한만 갖는다는 말이다. 권리와 책임의 상응 원칙에 입각해서 주주가 경영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경영자는 명시적이건 묵시적이건 주주와 계약을 맺지 않는다. 주주는 주주 총회를 통해 제한된 권한을 행사한다. 1)이사 선해임원을 가지며 2)회사 정관의 개정 또는 승인을 하고 3)회사의 합병이나 매각에 대해 승인할 권한이 있으며 4) 회사 해산에 대해 승인권을 갖는다. 그 외의 모든 의사결정권은 모두 이사회와 경영진에게 있다. 그리고 경영진이나 이사진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한 회사를 위한 경영적 판단으로 인해 법적인 책임을 물리지 않는다.
다만 최근의 주주가치론에 대한 이슈가 지속 제기되는 이유는 오너라고 불리우는 대주주가 기업과 관련된 다른 그룹 기업간의 상호 출자나 전환 출자 등을 통해 그룹의 이익 또는 대주주의 사익을 추구하는 일이 생기고 있기 떄문이다. 이는 기업의 영속성 측면에서는 필요 불가피한 의사결정이며 대주주가 기업의 영속성을 위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방편일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따라 개별 기업의 주주가치가 훼손되고, 대주주로의 부의 쏠림 현상이 심해지거나 개별 기업 관점에서는 이익이 침해되는 불합리가 발생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경영인은 주주의 대리인이 아니기 때문에 경영인의 인센티브를 주주 가치 극대화에 맞춰야 한다는 주주가치론의 주장은 아무 데도 설 자리가 없다. 주가는 기업 경영의 결과물일 뿐이다. 또한 주가는 경영 실적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거시 경제 여건, 금리 움직임, 정치적 상황 등 경영인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에 의해서도 많이 영향을 받는다.
일반 주주는 대부분 투기 목적으로 주식을 산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아 투기 차익을 노리는 것이 주목적이다. 따라서 본인들이 주식을 보유하는 기간에 주가가 오르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했을 때 주저없이 매도로 이익을 실현한다. 주가는 경영의 결과물이지 경영 성과를 이끌어가는 기관차가 아니다. 주가를 올리려고 노력하면 경영 성과가 좋아진다는 것은 주객전도다. 장기적인 기업의 성장과 이익이 단기적인 경영성과와는 배치되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피터드러커가 말했듯 기업의 본질은 고객에게 가치를 제안하여 고객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영속성을 추구한다. 그 가운데 기업이 존재 가치와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인지,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의 경영상의 의사 결정이다. 기업의 존속과 영속성을 위해 법인은 소유와 통제가 분리되어 있다. 주주는 주식이 상승할 것이라고 믿고 해당 기간동안 소유권의 일부를 매수하는 행위로서 제한된 소유권과 제한된 통제권에 대한 명확한 인식하에 이루어진다. 이를 경영권과 결부시켜 기업의 목적과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주주의 권리가 아니다. 기업의 영속과 지속 성장을 바란다면 단기간의 이익과 차익실현에 집중하는 소액 주주의 입김은 최소화하고, 사회적인 합의와 법적인 규제에 의해 경영권이 잘못 발휘될 여지를 감독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주주가치의 극대화이든 이해관계자의 사회적 가치 확대이든 이 모든 것은 경영상의 판단에 맡겨야 하고, 그 경영상의 결과는 시장과 소비자의 니즈와 원츠를 제대로 충족시키는 가치를 제공하는지에 대해 소비자가 판단하게 맡겨야 한다. 결국 기업은 소비자에게 선택되지 못하면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가 제시한 명제처럼 좋은 경영성과를 내는 지배구조가 그 회사에 가장 좋은 지배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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